방명록

<나비족> 홍일표

오드리 2 501
홍일표의 「나비족」감상 / 오민석

 

 

나비족

 

  홍일표(1958~ )

 

 

해변에서 생몰연대를 알 수 없는 나비를 주웠다

 

지구 밖 어느 행성에서 날아온 쓸쓸한 연애의 화석인지

나비는 날개를 접고 물결무늬로 숨 쉬고 있었다

수 세기를 거쳐 진화한 한 잎의 사랑이거나 결별인 것

 

공중을 날아다녀본 기억을 잊은 듯

나비는 모래 위를 굴러다니고 바닷물에 온몸을 적시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것이 나비인 줄도 모르고 하나둘 주머니에 넣는다

 

이렇게 무거운 나비도 있나요?

바람이 놓쳐버린 저음의 멜로디

이미 허공을 다 읽고 내려온 어느 외로운 영혼의 밀지인지도 모른다

 

공중을 버리고 내려오는 동안 한없이 무거워진 생각

티스푼 같은 나비의 두 날개를 펴본다 날개가 전부인 고독의 구조가 단단하다

찢어지지도 접히지도 않는

 

바닷속을 날아다니던 나비

 

 

      —시집『밀서』(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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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공중을 날아다니던 나비가 바닷물 속에서 “물결무늬로 숨 쉬고” 있다. 나비는 “수 세기를 거쳐” 진화의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의 “쓸쓸한 연애” “한 잎의 사랑” 혹은 “결별”은 화석 속에 포획돼 존재의 긴 흔적을 보여준다. 존재는 살아서도 끝없는 변용(metamorphosis)의 길 위에 있지만, 죽어서 더 자유로운 변용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의 나비가 돌처럼 무거워져 바닷속에 잠겨 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생몰연대”를 넘어서는 이런 흔적이 지상에 얼마나 많은가.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Comments

오드리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학 평론가이자 시인이신 홍일표님의 시를 공유해봅니다.- 김용례입니다.^^
전영희
좋아요~~!  이렇게 좋은 시를 함께 나눠 줘서 감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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